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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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명상

사랑은 기다림

작은씨앗 boolsee 2009. 10. 17. 09:02
  언제인가 모임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들의 학업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아들을 둔 분께서 상담 치료를 받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은 충격이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고 나서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서 그 분 아이와 같은 사례가 꽤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한 친구도 그런 경우에 속했습니다. 이전 같으면 한 참 뛰어놀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경쟁'이란 구도 속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못해주고 싶겠습니까?
우리 부모님께서도 40줄에 든 자식이 조금 늦게 들어오는 날에는 꼭 전화를
하셔서 '밥은 먹었느냐?', '언제 들어올 거냐?','술은 조금만 먹어라.' 등등
아기 챙기듯 하십니다. 아마도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 걱정으로 사실 분들이 우리 부모님들이 아니실까요?

   전 미혼이라 부모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합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고,
좋은 길로 인도하고 싶고, 출세하게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야 오죽하랴만은 잠시 그런
생각을 멈추고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아이에게 제시하는 길로만 가게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인간은 신으로 부터 이미 무한한 우주적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본질을 가리는 것이 우리의 지식[앎=사실은 '알고있다'는 '생각'을 믿는 것]인 것이지요. 때로는 아이가 선택하는 길이 부모가 보기에 실패할 길이고, 또는 이미 가 본 길이라서 굳이 갈 필요가 없을지라도 부모는 아이와 함께 그 길을 걸어가 주는 든든한 도로 경계석과 같은 존재이어야 합니다. 결코, 부모가 아이보다 앞서가지 않으면서 아이가 가는 방향에 대해 정보만을 주면서 최종 선택은 아이가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잠깐! 
아이가 선택하게 한다고 하는 것의 전제는 부모가 사전에 그렇게 결정하도록 유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아이 스스로 모든 위험과 기회에 대해 판단하고 내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지요.
  때로는 아이의 선택에 부모님은 불안하실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모두, 그리고, 이미 그 아이는 무한한 능력을 받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잘 닦인 길이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무한하게 펼쳐진 드넓은 들판을
자신의 두 발로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서 씩씩하게 나아가는 아이.
부모라는 경계석이 그 뒤를 따라 가면서 아이가 지나간 길을 알게 해 주는 장면을 그려보십시오. 가끔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아 주시고 열심히 아이를 응원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그 아이는 자신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기다림입니다.

제 아이가 없어서 하는 말이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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