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생활 속 명상 (25)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하게나
위쇼스키 남매의 걸작이라 하고 싶습니다.매트릭스(Matrix, 1999~2003) 시리즈의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에 이어서또 다시 새롭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불멸이란 과연 무엇인가?존재는 무엇이고,사랑은 무엇일까? 기본적인 윤회의 삶을 보여 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사실은 그 보다는 조금 더 다른 시점으로 '클라우드(Cloud)' 라는 것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클라우드(Cloud)는 무엇일까요? 언제부터인지 정보통신(IT)업계에서 사용해 오는 용어이지만꼭 PC와 인터넷 세상에 한정해서 사용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클라우드라는 것을 존재와 존재간의 연결 지어짐을 설명하는 단초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We are All Connected ! 모든 존재는 엮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상..
정답이 저하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난이 되는 것이옵니까? 경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는 저급한 것이 되는 것이옵니까? 어린 아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 만물 모두가 문제가 될 수 있고 세상 만물 모두가 그 답이 될 수 있는 것이옵니다. 배움에 있어 가장 경계해야 할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정답을 안다고 자만하는 오만이옵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잣대로만 사물을 판단하는 편견이옵니다. 그 오만과 편견이 저하의 눈과 마음 모두를 어둡게 하고 있음을 깨달으셔야 하옵니다. 배움에 임하는 자세부터 바르게 하시옵소서 - 해품달 2회 이훤과 허염이 논한 배움의 자세 - 어느 정도 관찰이 자연스러워지게 되면 다시 익숙함이 되살아나면서 '안다' 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만 항상 관찰 속에 깨어 있는 배움의 자세를 가..
이전에 작성해 두었던 글을 숙성 시킨 후에 다시 읽어 보면 스스로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얼마 전, 친한 친구가 암이란 큰 병을 진단 받고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연락을 받았을 때, 제 심장이 평소 보다 더 갸날프게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한 마디로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전율을 느꼈던 것이지요. 병문안을 갔을 때, 친구 침대의 한 켠에 놓여진 책이 바로 '시크릿' 이었습니다. 친구가 가져다 놓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긍정'의 에너지를 일깨우기 위해 가져다 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써 놓은 글을 보니 좀 더 서술할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전에 쓴 "시크릿" 되새김질 글에서는 실제적인 예시가 없이 제 느낌을 적었습니다만 이번 글에..
회사에서 받은 가을 추천 도서 중 한 권인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스님은 이제 계시지 않습니다만 스님께서 남겨 두신 향기로운 가르침은 나를 성찰하고 깨어 있도록 해 줍니다. '방하착(放下着)'! 마음 공부를 하시는 선승분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가르침 중 하나가 '놓아버리라'는 말입니다. 놓아버린다. 무슨 뜻인지 잘 압니다.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헤아립니다) 이와 관련해서 오늘 아침 출근 길에 문득 떠오른 단상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느 쪽을 더 놓아버리기 쉬울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 ...... ...... ...... ...... ...... ...... ...... ...... ...... ...... ...... ...... ..
주간 업무 회의를 진행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프로젝트 진행이 잘 않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늦어지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마냥 기다리지 말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분들끼리 적극적으로 협의를 해서 일정안에 끝내야하지 않겠냐고 하였습니다. 내용으로만 보면 문제가 없다고 느끼실지 모르시겠지만 당시 회의를 끝내고 나서 뭔가 마음 속에 꺼림직한 느낌이 계속 들었습니다. '목소리 톤이 평상시 보다 좀 더 높지 않았나?' '듣고 있는 담당자가 거북한 것 같았는데?' '일방적으로 업무를 강요한 것은 아닐까?' 등의 느낌이었습니다. 내 자신이 담당자라면 싫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이었지요. * 회의 때의 느낌: '그 일을 하기 싫어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왜 빨리 빨리 진행하지 않는 것이죠?' '..
오늘 아침 기사 브리핑에서 나온 이야기 입니다. 중앙대의 "기업식 구조조정" 에 항거(?)했단 이유로 징계(퇴학)를 받은 학생들이 소송을 걸고, 동문 변호사가 이를 지원하려고 했더니 학교측에서 이들 변호사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이들 학생을 "본보기" 삼아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본보기: [명사] 1. 본을 받을 만한 대상. ≒범본2(範本). 2. 어떤 사실을 설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하여 내세워 보이는 대표적인 것. ≒궤칙, 보기1, 본1, 패턴. 3. 어떤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대표로 내세워 보이는 것. 4. 본을 보이기 위한 물건. 국어 사전에 나온 단어의 뜻입니다. 사실, 의미 자체에는 그 어떤 부정적 의미나 폭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당히 좋은 의미, 즉, '선례'나 '역할 모델(Role m..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겪은 일을 잘 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대로 가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2년 전, 팀장을 할 생각이 있냐는 상사의 질문에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 것이 씨앗이 되어, 실제로 팀장을 시켜 달라고 한 것이 작년 이 맘 때 쯤이었습니다. 상사는 당연히 2년 전 제가 한 말을 상기하셨는지 팀장을 시켜주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1년 여를 이 팀, 저 팀으로 팔려다녔습니다. 속칭, '정치'라는 행위를 하지도 않았고, 업무 성과가 남보다 특출나게 뛰어나지도 않았던 저 입니다만 오늘자로 팀장 발령을 받았습니다. 상사께서 그러시더군요. "딱 1년 만이지?" 라고....
지난 번 글에서 '나'라는 것이 해체되고 남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http://goo.gl/NHAA). 글의 말미에 '나'를 허상이 아닐까 했는데 왜 허상이라 했는지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기억할 수 있을만큼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 당시에도 과연 '나'라는 것이 존재했는지 기억나시는지요? 저는 물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언제부터인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한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과학적인 탐구를 통해서나 다른 학문을 통해서 밝혀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분야도 아니고 그런 탐구 방법이나 진실 해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글의 주제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 라는 중심성(?)이 있었던 것은 분명..
마음 공부를 하면서 가끔씩 '나'란 인식이 없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아니, '나'란 인지를 강하게 하는 것의 반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이전에는 이 '나=ego'가 사라지는 것이 '나란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습니다만 이것 또한 실상이 아니었음을 눈치챘지요. 그 이 후에도 가끔씩은 '나'란 존재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 지내오다가 문득 연말에 받았던 크리스마스 케익을 계기로 해서 '나눔' 을 알게되었습니다. '나눔'이란 것이 '내가 가진 것을 나눈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아니란 것을 안 것입니다. '나눔' 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게 아니고 '나'가 사라지고 남는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나를 고집하지 않고, 나의 중심을 벗어난 '우리'로 향하는 것. 그것이 진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해를 돌아보면 역시나 여기 저기 '불통'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용산 참사',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 시도', '4대강 사업 추진','무상 급식 예산 삭감' 등등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여기 저기서 아픔이 느껴진 한 해였습니다. 2010년에는 이런 '불통'의 시대를 조금이나마 '소통'의 시대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대화'가 무엇이고 '소통'이 무엇이라고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대화' 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내' 가 '다르지만 또 같다' 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바탕에서 서로의 합의할 수 있는 부분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대화를 하는 목적..